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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용 목사 – 짧은 묵상

<짧은묵상(200706)벧전3.13-22>

베드로선배님은 사실 내가 받아들일수 없는 말씀들을 줄곧 해오십니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으라고,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더 순종하라고,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님으로 칭하고 모신 것처럼 아내도 남편에게 그렇게 하라고(사실, 저는 그런 아내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반대는 종종 보았습니다…), 정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라고… 문장으로는 거창하고 멋있어보이는데 현실의 삶으로는 참 어려운 내용들입니다.

베드로도 그렇게 했을까?라는 생각마져 듭니다. 그러나, 그가 만난 예수님! 십자가의 고난과 심문을 다 지켜본 베드로! 거짓증인과 억울함, 그것도 우주의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피조물인, 그것도 쓰레기보다 못한 악한 인간들인 그들앞에서 무릎을 꿇고 욕을 얻어먹고, 뺨을 맞고, 침뱉음을 당하고, 죄인취급당하고…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 가운데서 한마디도 않하시고, 침묵으로 그 시간을 지나가신 예수님!

침묵이 아니라 대답을 했다면, 그들은 이해도 못하고, 받아들일수도 없는 악함으로 가득찬 죄인덩어리들이니, 주님이 하실수 있는 것은 침묵말고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위한 것이겠죠. 할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자들이 받아들일수 없어서 받아들이는 자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침묵하면서 당하는 자존심과 괴로움들…. 물론 주님은 자유롭게 이겨내실수도 있었겠지만, 나의 경우라면, 그 시간들은 정말 지옥이었을 것입니다. 당하고 당하고 또 당하고도 당해야할 것이 또 가다리는 그 순간들과 경험들….지옥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런 지옥을 자신이 친히 감당하셨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침묵도 당함도 억울함도 감당할수가 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게 사랑이 없음이 문제였지, 상대방이 이상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애매한 고난! 분명한 고난! 이 모두를 감당할수 있는 것은 ‘사랑’인 것같습니다. 사랑이 없으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 사랑이 있다면 그 모두는 안고 갈수 있고 품고 갈수 있겠죠.

그래서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여러분은 ‘복’이 있다고 하신 것같습니다. 그 사랑은 악으로, 고집으로, 깡다구로 고난을 이겨낸 것이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하기에 정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을수 있고, 사랑하기에 약자를 위해서, 사랑하기에 남편과 아내를, 사랑하기에 자녀를, 사랑하기에 성도를 위해서 내가 고난을 받을수 있습니다. 비록 내가 도저히 이해가 않되더라도요…

그를 향해서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하루, 나는 복있는 사람, 복받은 사람이고 싶습닏다. 그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이해도 않되는 나를, 구원의 가치도 없는 나를 구원하신 것이 이해가 않되는데도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그런 하나님의 사랑이 내안에서 흘러 밖으로 흘러가는 날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부정보다는 긍정의 말로, 부정보다는 긍정의 생각으로, 부정보다는 긍정의 결단을 연습하는 하루로 달려갑니다. 모두들 그런 하루이기를 응원합니다. ^^*

내일 나눔은 김소망자매입니다^^*
https://youtu.be/JgVGl9HN7q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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