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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용 목사 – 짧은 묵상

<짧은묵상(200710) 사1.1-20>
오늘 섬김이가 짧은묵상을 올리면 리플로 변경할께요^^* 먼저 올려서 죄송합니다.

신앙은 관계입니다. 형식은 관계를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 그러나, 형식만 남으면 그것은 종교입니다. 내가 주인된 모습입니다. 종교의 특징은 주체가 ‘나’입니다. 신앙의 특징은 주체가 ‘하나님’입니다. 종교는 신에 대한 감정과 마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중요합니다. 내 필요를 채워야되고, 내 어려움이 해결되어야하고, 내 감각적인 것에 만족이 있어야합니다. 상대방 하나님이 어떤 마음인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모두가 나에게 집중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형식이 중요하고, 형식만 남습니다. 드리는 것 자체가 중요하고, 어떻게 드렸는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시대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의 하나님은 종교화되었습니다. 드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대로, 자기 생각대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반응은 전혀 고려치 않고요.

그런데, 오늘 하나님의 반응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십니다. 새번역에 나오는 동사만 언급하면 이렇습니다.
“지겹다, 싫다, 누가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쓸모없는 것들이다, 역겹다, 참을수 없다, 견딜수 없다, 싫다, 짐이 될뿐이다, 너무 지쳤다,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나는 듣지 않겠다”….

그래도, 그들은 예배를 잘 드렸고, 기도도 잘 했고, 우리가 할 일은 잘 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면서, 왜 하나님은 이렇게 삐져있을까? 왜 내가 이렇게 신경써서 제사지내고 봉사하고 수고하는데 왜 몰라줄까?….하면서 오히려 하나님때문에 마음상했다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아니라, 자기가 주체이고, 하나님은 자기를 위한 도구일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더 이상 신이 아니라, 자기의 종일뿐입니다.

하나님의 고발입니다. 하나님의 돌직구입니다. 너희들의 예배와 헌금과 봉사가 사실은 ‘너’를 위한 것이지, ‘나’를 향한 마음이 아니었다고 말이죠.

나 자신들을 돌아봅니다. 내가 목회하고 있고, 열심히 이것저것하고 있는 것이, 혹시 하나님이 지겹다고, 싫다고, 다 쓸모없는 역겨운 것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들은 아닌지…그런데 나는 열심히 하고 있고, 뿌듯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님은 우리들에게 요청하십니다. 종교화된 예배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깨끗하게 하라고, 악한 일을 버리고 옳을 일을 하라고. 약자를 도와주고 변론해주라고, 관계를 회복하라고…하나님과 관계를 가진 자는, 이웃과의 관계도 깊어집니다. 그 관계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속삭음을 나누고 있으면, 이웃을 향해 그 사랑이 흘러갑니다. 사랑은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약자와 힘없는 자, 도움을 받았지만 되갚아줄수 없는 이들을 도와줍니다.

주님은 다시 요청합니다. 이것을 기꺼이 하려는 마음으로 순종하면 내가 회복시켜줄 것이라고…그러나, 거절하고 배반하면 칼날에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요….
그럼, 나는 신앙인인가, 종교인인가? 나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 아니면 액자속에 그림과 같이 필요에 따라서 한번씩 보는 형식의 존재인가?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기도를 오래해도, 길게 해도 팔을 벌리고 기도해도 거들떠 보지도 않으십니다. 왜요?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니까요.

관계를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첫사랑의 달콤함으로 하나님과 둘만의 비밀들이 풀어지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거기에서 하늘문이 열리고 은혜는 시작될 것이니까 말이죠.

내게 막혀있는 마음들, 막혀있는 관계들, 피곤하고 건조한 삶, 무기력함, 짜증과 분노로 일상을 덮어버린 모습들…. 종교화된 내 모습입니다.
하나님에게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과 관계의 회복이 없이는 삶의 회복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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