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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용 목사 – 짧은 묵상

By September 2, 2020 No Comments

<짧은묵상(290902) 창37.18-36>

오늘 말씀을 보면서 조금 다른 관점에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르우벤과 유다를 제외한 다른 형들은 내 내면을 상징합니다. 르우벤과 유다는 나의 또다른 내면입니다. 즉 내 안에 두 마음이 공존하는 것이죠.

다른 형들은 내 이웃인 요셉을 향해 미움이 가득합니다. 미우니까, 모든 것이 왜곡된 결과물을 냅니다. 판단력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합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그 꿈이 이루어지는데 보자…” 이 말은 형들의 축복이 아니라 비꼬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꿈마져도 그들은 비웃고 무시합니다.

더 나아갑니다. 모든 것이 밉게 조입니다. 요셉의 장점인 꿈꾸는 것, 이 장점이 밉습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그의 환경과 스타일 자체가 밉습니다. 심지어 그의 존재 자체도 밉습니다. 그래서 구덩이로 던져버립니다. 그리고 죽이기는 그렇다…라는 긍휼이 조금도 없습니다. 상인에게 팔아버리면서 동물취급해버립니다. 결국, 미움의 열매는 죽음입니다. 요셉을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죠.

이 모든 것은 미움이 만들어놓은 결과입니다. 요셉은 그의 동생입니다. 그러나 작은 긍휼도 없습니다. 하지만, 르우벤과 유다는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그들은 요셉을 향한 긍휼이 있었습니다. 어떻게해서라도 살리고 싶습니다. 긍휼의 마음의 열매는 생명입니다. 그를 결국은 노예로 팔렸지만 살아났습니다.

우리 자신안에 두 마음을 봅니다. 내가 남편을, 자녀를, 직장인을, 성도를 미움이 있으면 모든 것은 왜곡되게 보이고 그렇게 해석이 딱딱 맞아집니다. 그러나 그 해석도 틀릴뿐만 아니라, 결과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내안에 긍휼이 있다면, 그 해석은 못할찌라도 결과는 생명이고 하나님이 일하실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죠.

내게 이웃을 바라보는 관점이 동일한 사람을 이렇게 다르게 판단해버립니다. 완전히 이상한 괴물을 만들어버리는 것이죠. 내가요… 미움! 사람을 파괴하고 관계를, 영혼을, 성장을 죽게 만들어버립니다.

또 한 사람 야곱이 등장합니다. 그는 타인입니다. 나밖에 있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는 나의(10명의 아들들) 거짓말에 속아넘어갑니다. 요셉죽었다고…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증거도 분명하고, fact가 정확합니다. 그러나 정확히 속습니다. 아들들의 속마음을 전혀 알수가 없이 전하는 말에 의존하고 믿어버립니다.

상대방은 내 속마음을 모릅니다. 그들은 내 말을 듣고 판단하고, 생각해버립니다. 내가 그를 속이고 있는지 무슨 의도로, 무슨 바램으로 교묘하게 강조를 하는지를 모릅니다. 그는 속고 있고, 나는 속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관계속에서 우리를 엉망으로, 해석하기 어렵게 꼬아버리는 밑바탕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말을 곧이 듣고 반응하는 것은 유보가 필요합니다. 한템포 쉬고 판단하는 것이 지혜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요, 이런 인간들의 미움과 속임과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은 성취해 가신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팔려갑니다. 형들의 의도나, 아버지의 키움과 전혀 상관없이요. 이것은 산비이고,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가시고, 인간의 아무리 악함이라고 소망으로 만들어가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내게 어떤 상황과 최악의 환경을 만나더라도 내 마음에 미움이 아니라, 긍휼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미움은 아닙니다. 왜요? 미움은 상대방을 향한 어떤 모습도 바른 해석이 아니라, 왜곡된 해석, 상대방을 죽이는 해석만 즐비하게 보이고 또 그렇게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긍휼은 결국에 생명으로 가고, 상대방의 좋은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런 긍휼의 마음을 내가 가지고 있을때, 그 다음에 일을 만들어 가시는 것은 하나님이 향하십니다. 보디발로 팔리게 하든지, 감옥에 가든지… 그 과정을 넘어서서 결국은 총리로, 소망의 열매로 성취하실 것입니다. 단지, 내게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타인을 바라볼때인 것이죠….

미움은 나도 나를 속이고, 상대방도 속이고, 다른 제3자도 속이고…모두 절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진흙탕에서도 그를 인도해 나가실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잘난 것은 없고, 하나님만이 소망이고 일하시는 분이심이기에 겸손이고, 순종입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만들어가시고, 공동체를 만들어가신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성도의 마지막은 소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