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sQT

정민용 목사 – 짧은 묵상

By September 1, 2020 No Comments

<짧은묵상(200901) 창37.1-17>

요셉의 꿈이야기를 볼때마다 좀 이상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자기 꿈과 교만함이 형즐의 질투를 만들었고, 자기가 뿌린 것을 심은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꿈도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꿈을 하나님이 주신 것일뿐이고,,거기에 반응할 뿐입니다. 좋은 꿈이다보니 이야기하다보니 남들이 듣기에 불편하게 만든 것이죠.

물론 요셉의 철부지없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에서 오는 누구나가 경험할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이 하나님이 요셉과 가족들을 사용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잘못과 형들의 미움으로 인한 형제난에 대한 결과가 구원의 역사로 이어지는 것들…

가족안에 어려움과 질투와 교만과 싸움들이 우리가 보기에는 꼴볼견이고, 심하면 콩까루집안처럼 보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모습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시는 것을 봅니다.

가정이나 공동체안에 혹은 개인에게 이런 저런 어려움이나 인간적인 실수들오 인해서 힘겨운 과정을 지날수가 있습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 모든 과정안에서 잘못을 따지고 일이 꼬인곳에 힘들어하기보다, 하나님이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하신 뚯을 이루실 것이라는 소망과 신실하심을 바라보는 이들입니다.

일을 하다가 막히거나 일이 꼬일때가 있습니다. 여러 소식을 접하고 부정적인 것을 만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가야할 길을 막으려고 합니다. 그것이 사단이 늘 우리에게 쓰는 전략이죠. 보이는 것에 집중하게 하고, 감정에 충실하게 합니다. 그럴때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하니까요.

요셉은 도단으로 가야합니다. 아빠가 요청해서 가는 길이지만, 미움이나 험한 길이지만, 자신이 가야할 역할을 주셨기에 그는 그 길을 걸어갑니다. 어떤 길인지도 모르지만… 그럴때 나와 상관없이, 내 경험과 예상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또 다른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보이지 않고,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그 길을 갈수 있는 것은 주님의 구원과 나라를 완성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 비를 뚫고 햇빛을 비춰주시는 그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하시네요. 우리 아버지되신 그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길을 다시 툴툴 털고, 기대하면서 말이죠. 찬송하며 오늘도 새날을 시작합니다. 성도의 마지막은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