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sQT

정민용 목사 – 짧은 묵상

<짧은묵상(201006) 고후8.16-24>

바울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분명한 두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모든 것이 되신다는 확신과 경험입니다. 어떠한 위기와 어려움속에서도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임을 그는 이미 앞장에서 고백했습니다. 또 하나는 동역자에 대한 확신과 경험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신을 세워주신 것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그 사역을 잘 감당할수 있도록 동역자가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귀한 일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혼자서는 감당을 못합니다. 함께 할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디도는 그런 귀한 동역자였습니다. 바울의 요청을 받아들일뿐만 아닐니라 자진해서 하나님의 열성으로 바울을 도와가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모습을 보고 바울은 참 많은 위로를 얻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HOF교회에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 성도들을 한몸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한 몸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세우고 격려하며 나아가는 한 몸입니다. 떨어질수가 없고, 혼자일수가 없습니다. 좋아도 혼자 좋을수 없고, 아파도 혼자 아플수 없습니다.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개인주의는 교회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고,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우리들에게 잘못인식된 신앙관인 한동안 지속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샤머니즘적인 토양과 문화의 영향인 것같습니다. 이름하여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왜곡된 모습입니다. 이웃에 대한 부분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관계는 수직관계만이 아니라, 수평관계도 동일하게 요청하십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내 이웃과 관계가 잘 이루지는 것을 보면 알수가 있습니다. 이웃과 삶을 나누고, 사역하고, 함께 이웃과 믿지 않는 영혼들을 세워가는 모습을 볼때, 그는 지금 하나님과 친밀함을 나누고 있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홀로 신앙은 맞지 않는 옷입니다. 물과 불의 관계입니다. 가나안성도? 말그대로 가나안입니다. 성도는 아닙니다. 가나안과 성도는 물과 불의 관계와 같습니다. 교회안에서도 가나안성도가 있을수 있습니다. 아픈 성도입니다. 무언가 관계안에서 사단이 틀어놓은 것이 있습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한몸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나라, 영혼구원하여 제자만드는 사역이 이루지지 않도록 방해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나홀로 신앙입니다.

우리안에 이것이 회복될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우리 공동체안에 혹시 이런 모습이 있다면 부흥이 일어날수 있도록 성령의 은혜를 구하고 싶습니다. 비난과 정죄가 아니라 용납과 사랑으로 말이죠. 거기에서 생명의 꽃은 피고, 기쁨의 열매는 향기를 발할 것이니까요.

바울에게는 디도가 있었듯이, 저에게는 우리 성도님들이 있습니다. 목자목녀들에게는 목장식구들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내 목장식구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며 사랑을 나누는 기쁨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사랑할수 있고, 사랑하는 교회가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