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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용 목사 – 짧은 묵상

By November 13, 2020 No Comments

<짧은묵상(201113) 대하10.1-19>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눠지는 순간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과 솔로몬의 부하였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아서 이집트로 도망갔던 여로보암 두 그룹으로 나눠지면서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나눠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눠지게 된 것은 하나님이 아히야의 선자를 통해서 예언했던 것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갈라지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부정적인 모습을 생각하셨을까요? 나눠지게 하는 것보다 하나로 뭉쳐지는 것이 더 좋은데…곰곰히 생각해봅니다. 그러면서 작은 하나의 결론을 맺게 됩니다.

솔로몬은 말년에 하나님과 멀어진 관계가 되었습니다. 말씀의 정반대로 행했던 왕이었습니다. 이름하여 청개구리시절을 마지막으로 보낸 것이죠. 이렇게 계속가면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입니다. 죄에 대한 심판을 행하실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거룩한 백성을 찾아볼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전멸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과 한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네 나라가 영원히 견고케 되리라는 말씀. 그리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그런데 그 메시야가 다윗의 가문을 통해서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으로부터 르호보암까지 그런 거룩한 모습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담을만한 그릇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분리를 시키십니다. 거룩한 자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거룩한 그룹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윗과 언약을 지키기 위한, 신실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나님은 두개로 나누십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다른 하나는 다윗의 지파인 유다지파로….

결국, 나뉨은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함의 표현이고, 긍휼의 표현입니다. 창세기3:15절부터 시작한 언약을 인간의 죄악과 악함을 넘어서서 끝까지 신실하게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 나라와 후손들을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시고 다른 길을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은혜죠.

하나님의 신실함과 긍휼로 인해서 비록 겉으로 보기에 두 나라로 갈리어졌지만, 그 속내는 소망이고 희망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불평이고, 불만이고, 손해이고, 아닌것같지만, 오히려 그대로 두면 절망이고 심판입니다. 그러나, 손해인 그 현장이 사실은 긍휼의 현장이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새로운 소망의 현장입니다.

내가 계획 한 것, 내가 생각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때, 오히려 더 큰 위기와 힘듦이 찾아올때, 그때는 하나님이 없는 것같고, 힘들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듦은 내쪽의 입장이지, 오히려 나의 악함으로 인해서 오는 결과를 막고자 하나님의 긍휼을 발동하신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런 일이 해펀할때는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합니다. 상대방을 탓하거나 남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나 자신이죠.

르호보암! 그는 젊은이의 말을 들어서 엉망이 됐다고 우리는 생각할수 있지만, 어쩌면 늙은이의 말을 들었어도 결국은 나뉘어져야했습니다. 이러냐 저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이었을까를 정리하고 듣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내가 알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잠잠히 있을때 그 뜻을 말씀해주시고 새 소망의 길로 인도해주실 것이니까 말이죠.

성도는 주님앞에 서 있을때, 절망이 아니라 소망입니다. 상황이 닥쳤을때 그들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묻고 그 뜻을 찾아서 거룩함으로 회복해서 다시 출발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의 고백의 결론은 감사입니다.

오늘 하루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소망으로 시작해서 감사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한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