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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묵상(181214)요일1:1-10

By December 25, 2018 No Comments

요한일서를 시작하니까, 너무 많은 인생의 진리와 영원에 대한 설명들이 나와있어서 감당할수 없네요. 어느것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한번만 봐도 너무 감동스럽고 주옥같은 말씀들입니다. 너무 잘 써서도 그렇지만, 그 내용이 보이는 세계에 대한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을 말씀해주시고 인생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과 영원성에 대한 지도를 그려주니까 그렇습니다.

다른 것보다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그는 2천년전에 이 땅에 육신으로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제자들과 같이 자고 먹고 만지고 배고파하시고 목말라하시고 힘들어하시던 우리가 볼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상상의 존재가 아니라, 실존의 존재요, 경험의 존재, 나와 함께 이야기하고 감정을 주고 받을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궁금하면 질문도 하고 거기에 대답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분이시고, 태초부터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너무 놀랍습니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먹고 마시면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던 그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나는 40여년전에 엄마에게서 태어난 존재인데, 그분은 태초부터 계시고 온 세상을 창조하시는 창조주이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분을 만지고, 그분과 이야기를 하고, 불평도 하고, 요구도 했다는 말인가요! 놀랍습니다.

요한은 그것을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3년내내 같이 다니면서 알지도 못한 이 비밀의 신비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귐(Fellowshiop,코이노니아)이었습니다. 주님과 사귐, 교제가 있었기에 그것을 발견할수 있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그분의 관심을, 그분의 생각을, 그분의 마음을, 그분의 성품을, 그분의 바램을, 그분의 즐거움을, 그분의 뜻을, 그분의 기쁨을, 그분의 슬픔을, 그분의 분노를, 그분의 아픔을 같이 나누고, 같이 사귀었기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에게 일어나는 것은 슬픔,아픔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분의 아픔을 함께 나누었다고 해서 나도 아파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아픔이 그대로 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나누는 것은 아픔이 회복될 것을 소망하게 하시기에, 소망으로 인해서 결국에는 기쁨으로 종착하게 됩니다. 영혼들이 나를 알지 못하기에 절망하고 있는 모습에 주님이 슬퍼하시는데, 그 슬픔을 내가 받아서 그 슬픔의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그들을 살리는 것이죠. 기쁨의 잔치상으로 옮겨놓는 것이죠. 그들이 자신이 절망하는줄, 빠져나갈 구멍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입니다. 원래 보였던 것이 아니라, 보여주셔서 보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러 달려가고, 내 피곤을 무릅쓰고도 섬겨주니 그들이 기뻐합니다. 그것은 사귐의 결과입니다.

영혼구원은 예수님과 사귐의 열매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사귐이 없이 수고하고, 섬기고, 열심을 낸다면, 그 결과는 근심과 분노와 갈등과 포기일뿐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에게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은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을 알아버린 사람은 사명이 보이고, 예수님의 마음을 담아버렸기에 그의 관심과 그의 눈은 예수님을 전파하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영혼구원하여 제자삼는 것이죠. 이것은 구호도 아니고, 부흥의 전략도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자체이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향기일뿐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 나를 지옥에서 천국의 기쁨으로 바꾸어주신 예수님! 그분을 내가 만지고 보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분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을수 있을까요? 그것은 내가 다른 예수를 만났거나 아니면 만나지 않았을뿐입니다. 그러니, 영혼구원은 사명이면서도, 의무가 아니라,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영성일뿐입니다.

그런데, 힘겹고 버거울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예수님과 사귐이 끊어졌기 때문이고, 그 시간과 만남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못만나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데, 내가 바쁨과 분주함때문에 그 주님과 사귐이 없어져서 그렇습니다. 결국,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네요. 사귐이 관건입니다. 붙어있으면 되는데, 자꾸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니까 모든 갈등과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아침에 내가 점검할 것은 내가 예수님과 사귐을 가지고 있는가? 내 일상과 마음과 관계가 힘들다면, 환경과 사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라고하십니다. 그것은 말씀이고,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면 그 날은 상황과 관계없이 기쁨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이 바쁘게 하루를 시작했다면, 나의 능력안에서 힘겨운 마음전쟁과 감정싸움과 분노일뿐입니다. 그 시간이 우리의 영혼을 더욱더 깔아먹을뿐이죠. 그러니, 힘이 듭니다. 만사가 귀찮고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와 함께 사귐의 동산으로 가자고 하십니다. 거기서 평강의 노래를 부르면서 즐거움의 냇가에서 뛰어놀라고 하십니다. 오늘 하루를 말이죠.

사족인가요? > 현대인의 영성을 빼앗아가는 사단의 가장 강력한 무기중에 하나는 ‘바쁨과 분주함’입니다. 그리고 사귐의 시간을 빼앗고 다른 것으로 채워가게 하는 ‘유투브, 드라마, 영화, SNS, 게임…’입니다. 이것을 넘어야하는데…영성은 이것과의 전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옛날과 다르게 주님에게 가야할 장애물이 하나 더 생겨버렸네요. 갈수록 영성회복에 더 힘겨운 세상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