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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묵상(181218)요일3:13-24

By December 25, 2018 No Comments

오늘 말씀은 따로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본문입니다. 오히려 내 생각을 담고 토를 다는 것이 더 사족을 다는 것밖에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말씀을 묵상하고 있으니, 여전히 우리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우리안에 예수님이 거하신다”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영생을 가진 사람이다”이 땅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사람이다’…. 이것이 나의 Id와 신분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수가 있는가? drive licence나 주민등록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엇으로 내가 확인할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두가지 입니다.
첫째는, 내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알수 있고, 둘째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알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볼때에 우리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확인할수 있다는 것이죠.
이웃사랑!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보여주셨다는 ‘요3:16절’ 말씀은 잘알고 있어도,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면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요일3:16절’ 말씀은 잘 모를때가 있습니다. 사랑은 받는 것만이아니라, 줄때에 완성하는가봅니다. 부모의 사랑은 받는 것이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존경하고 순종함으로 사랑을 보여주는 것과 같이, 하나님이 생명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내 이웃을 생명으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 사랑이요, 내 이웃에게도 사랑입니다.
그래서, 주신 사랑을 받고, 받은 사랑을 또 주는 이 ‘사랑의 선순환’이 이루어질때, 그 공동체는 건강하지고, 생명의 역사들이 일어납니다. 믿지 않는 영혼들이 교회에 올때에 마음이 풀려지고, 상한 마음이 회복되어서 예수님을 믿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깁니다. 아픈 사람이 예배중에 치유를 경험하고, 막힌 문제들이 말씀중에 해답을 얻는 것은 생명이 흘러가고 있는 증거입니다. 믿음이 약한 이들은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영생의 잔치에 다시 참여케 되는 것은 당연한 모습들입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사랑을 흘려보내니 그곳에서 복음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사랑이 머문 곳에 생명이 잉태됩니다.
이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행할수 있을까요?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편뺨을 때리면 왼편뺨을 돌려되고, 내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헐벗은 사람이 공동체에 있다면 재물로 그들을 섬길수 있고, 미운 사람이지만 도움이 필요할때에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내 안에 거하신 ‘성령’의 마음이고, 그것을 행할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결과입니다. 그런 마음을 주셨다는 것은 내 마음이 아닙니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원래 없습니다. 아까운 내돈을 줄 마음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챙겨줄 마음도, 내 감정을 건딘 사람을 사랑할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성령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그러나, 마음만 주신 것이 아니라, 내가 ‘순종’만 하면 그것을 행할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순종’만 하면요!….
이것이 ‘사랑의 신비’입니다. 사랑하라해서 순종하고 억지로라도 했는데, 놀랍게 상대방이 변화하고, 상황이 바뀌는 것을 경험합니다. 도저히 그렇게 풀리지 않을 것같았는데, 이상하게 되어져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이 영적으로 강하게 닫힌 문빗장을 여는 열쇠였습니다. 그 사람을, 그 상황을, 그 문제를, 능력이나 지혜나 물질로 풀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 능력이고, 결론이었습니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배후에 사단이 역사하고, 사단과의 싸움이 이 땅에서 성도의 보이지 않는 전쟁일 것인데, 이 전쟁에 승리는 ‘사랑’이었습니다. 무슨 현란한 무기도, 놀라운 장비도, 깜짝 놀라는 능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면서 풀려져가는 그들의 마음과 모습들을 보면서, ‘성령이 행하셨구나,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시구나, 그분이 이일을 행하셨구나…’하면서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이죠. 성령님은 우리를 예수님에게 집중하게 하십니다.
결국,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내가 힘을 다시 얻고, 내가 회복할수 있는 방법은 ‘이웃을 사랑하면서’ 그리고, ‘성령이 마음을 주실때에 순종하며 행할때’입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 현장에서 사랑으로 몸부림할때에 나도 모르게 나를 묶고 있던 모든 어두움들은 사라지고, 그들에게 얽혀있는 것들이 다 풀려지는 것을 보며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 자체가 죽음도 이기시는 능력이듯이, 주님의 사랑을 행하는 우리에게 사랑은 신비입니다.
왜냐면, 그 사랑을 가지고 있고 행하고 있는 사람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이 다 응답하시는 것을 경험하기에, 기도가 담대하고, 삶이 담대해집니다. 육신적으로나 능력면에서 가장 나약하게 보이는 사람인데, 삶의 내용은 가장 강한 사람 그런 사람이 한두명씩 있잖아요? 그분은 사랑안에 거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담대함의 동력(Energy)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