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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묵상(181220)요일4:11-21

By December 25, 2018 No Comments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험할수 있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체험할수 있는 것은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할때에 하나님의 사랑이 꽃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꽃봉우리가 입을 닫고 있을때는 그 향기와 아름다움이 극히 제한되어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꽃 색깔이 무엇인지, 냄새가 무엇인지… 그러나, 입을 활짝 열고 태양을 향해서 얼굴을 내밀고 있을때면 그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은 완벽합니다. 그러나, 내가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랑이 얼마나 완벽한지를 알수가 없습니다.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경험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법은
첫번째는, 이웃을 사랑할때입니다. 그 이웃이 착한 이웃일수도 있고 못된 이웃일수도 있습니다. 내 감정을 끍는 이웃일수도 있고 가까운 이웃일수도 있습니다. 못마땅한 이웃일수도 있고 그냥 보기만 해도 이쁜 이웃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이 누구입니까? 모두입니다. 사랑은 선별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를 포용하는 것입니다. 선별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만족’일뿐입니다. ‘그럼에도’ 포용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감싸안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먼저 손을 내 미는 것이 사랑입니다. 보편성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 그런 의미이겠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서 ‘이웃사랑’이라기 보다는 ‘자기사랑’입니다. 내가 좋아하니까 다가가는 중심은 ‘상대방’이 아니라,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임에도 사랑의 손을 내밀때에 ‘하나님’을 경험할수 있는 것이죠. 왜냐면, ‘내’가 좋아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그를 나도 순종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품는 것이니까요….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법
두번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시인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시인한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죄인과 세리를 사랑하면서 살아가신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한다면 나도 내 삶에서 그렇게 살아갑니다. 시인이라는 말은 고백과 더불어서 ‘삶’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나의 삶을 통해서 ‘네가 믿는 예수가 너를 보니까 상상이 된다”너를 보니까, 나도 믿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하는 것이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세상도 볼수 있는 방법은 우리의 사랑의 삶입니다. 좋은 이웃이 아니라 못된 이웃, 편한 이웃이 아니라 멀리하고 싶은 이웃, 가까이하고 싶은 이웃이 아니라 모두가 고개를 돌리는 이웃을 향해서 내가 다가갈때, 세상은 그런 나를 보면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의 그런 반응을 보면서 우리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죠.

전통교회에 있었다면 이런 말들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을텐데, 영혼구원하다보니까 VIP를 섬기면서 사랑의 신비를 체험적으로 알수 있는 것이 바로 요한일서가 참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죠.

원수를 사랑하고,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는 그 사랑의 사람안에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당당함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죽음앞에서도 담대함을 가집니다. 교회역사에 수많은 선배들의 순교의 역사와 고백들이 그것이죠. 아니, 지금도 우리 주위에 손해를 보면서도, 굶을지언정, 재물과 세상의 유혹을 뒤로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결단과 비장한 삶은 담대함 그 자체입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무엇이 그렇게 당당한지… 사랑하면 할수록 더 당당해집니다. 가난한 자, 약한자, 장애우, 전쟁현장, 난민현장…그곳에 단숨에 달려가서 자신을 불사르는 담대함은 돈으로도 살수 없는 사랑의 증거인 것이죠.

그런데요, 그 담대함의 확증은 심판앞에서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는 사람은 심판앞에서 두려워합니다. 사랑의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네 안에 있느냐?”그 사랑을 내게 보이라’고 하실때에 이 땅에서 그렇게 연습하던 사랑의 흔적들이 심판앞에서 꽃을 피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사랑없이 나를 위해서 살아온 사람은 그 자리가 두려움의 자리입니다. 보이는 예수님앞에서 보이는 사랑으로 증명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세상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랑은 세상을 넘어섭니다. 사랑은 세상이 하지못하는 것을 행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세상이 비난하고 미워합니다. 조롱하고 욕합니다. 왜냐면, 자기에게 없는 것이기 때문이고, 자기에게 사랑없음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결정체는 십자가였습니다. 그래서 사랑없는 그들이 그렇게 사랑을 핍박한 것이죠. 그러나, 당당함으로 사랑의 길을 걸어가신 예수님! 그분이 정말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신 것이죠.

내가 예수님을 믿고 있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해주는 것은 결국 ‘이웃사랑’입니다. 교회출석과 봉사와 기도와 은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단도 다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사단도 근접할수 없는 것은 바로 ‘이웃사랑’입니다. ‘내 사랑’은 사단의 특징이지만, ‘이웃사랑’은 하나님의 특징이니까요….

하나 더> 마지막 시대의 특징은 ‘불법이 성해지고, 사랑이 식어’집니다(마24:12). ‘이웃사랑’이 사라지고, ‘자기 사랑’이 넘쳐납니다(딤후3:2). 사단의 전략이요, 성도의 영혼을 침륜에 빠지게 하는 달콤한 속임입니다.